왜 이렇게 작년에 사두고 안 읽은 것들이 많은지ㅋㅋㅋㅋ 하여간 이것도 작년에 발간 소식 듣고 사뒀다가 책장에만 꽂아뒀던 책이다. 이번에 로판만 줄줄이 읽다가, 아 이제 로판 좀 그만 읽고 다른 것 좀 해야지! 라고 생각하다가 한 것이 결국은 로판에 대한 비평서 읽기였다..ㅋㅋㅋㅋㅋㅋㅋ
스포..주의..? 사실 논문 같은 형식이라 스포랄 것도 없지만
사실 로판 뿐만 아니라 로맨스라는 장르가 여성의 욕망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장르라는 건 이제 와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환상은 허공에 짓는 누각이 아니'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당연한 이야기들인데 그럼에도 흥미로웠던 부분들이 있었다. 악녀의 본질은 성격이 아니라 그 위치라는 점과, 육아물의 폭군 아버지 캐릭터는 성적 착취의 가능성을 배제한 나쁜 남자라고 하는 점.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요즘 시대의 로판 독자층은 과연 정말로 사랑을 원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는 점.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 남주의 기본 요건은 '독자가 갖고 싶은 것의 화신'일 것 (ex. 걸어다니는 부와 권력의 화신)인데,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오래된 로맨스 소설(기사도 문학 말고!)에서는 그 시절 여성이 직접 부나 권력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에 남주를 통해서 그것을 간접적으로 획득하는 것이 스토리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로맨스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은 러프하게 본다면 독립된 인격체라기 보단 독자가 원하는 그 모든 것이 의인화된 형태다. (물론 이게 너무 극단적이면 남주가 인간 같이 안 느껴지는 단점이 있음... 그냥 개인으로서의 특색이 1도 없어서 너무나 투명한 욕망의 거울 같이 느껴진달까...) 결국 아주 러프하게 본다면 로맨스 소설은 모두가 갖고 싶어하는 것(주로 권력과 돈과 명예와 무력과 관심과 애정)을 획득하는 스토리이고, 악녀 캐릭터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악녀는 도식적으로는 주인공의 왕관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들러리인 것이다... (아랫도리 가벼운 남주가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짚어주는 점이 재밌었다. 원하는 사람이 많은 물건은 더욱 값어치 있는 물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여자가 많은 남자란 그 남성성과 매력이 보장된 물건이라는 뜻. 그래서일까 빅토리안 영국에서도 '개과천선한 난봉꾼이야말로 최고의 남편감이다'(A reformed rake makes the best husband)라는 말이 있었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욕망인 듯.. 나도 챠라오 캐릭터 좋아하는 편이고...)
그리고 결국 딸바보가 되는 폭군 아버지 캐릭터는 남주와 마찬가지지만, 거기서 성적인 긴장감만을 거세한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에게 수요가 많다는 건 그만큼 성적 착취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조차도 요즘의 독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뜻이겠지. 결국 로맨스란 내가 원하는 것을 간접적으로+자발적으로 대령해 바치는 인물과의 관계를 그린 스토리이고, 이 욕망이 노골적이 되어갈수록 그 인물이 '남편감'일 필요는 없다. 그 인물이 아버지나 남자형제여도 ok라는 점은 결국 로맨스의 핵심이 '사랑'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 로맨스 속의 남주격 캐릭터는 트로피와도 비슷하다. 이런 건조한 시각으로 로맨스를 분석하는 시선이 재밌었고, 나와도 잘 맞았던 것 같다.
다만 <그 오토메 게임의 배드 엔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오토메 게임을 거론한 부분은 아쉬웠다. 물론.. 이 책은 오토메 게임이 아니라 로판에 관한 책이고, 오토메 게임에 대해 1도 모르면서 오토메 게임에 빙의하는 소설이 로판계에 수두룩하긴 하다. (악역 영애가 나오는 오토메겜은 몹시 몹시 드물며.. 배드엔딩만 있는 오토메겜은 1000장도 안 팔릴 망겜이다... 전세계서 10000장 팔리면 잘 팔렸다는 소리 듣는 판에서 상업작으로 그런 겜이 나올리가...) 그렇지만... 그렇지만...!! 첫 오토메 겜으로서 루비파티의 안젤리크까지 이야기했으면 오토메 게임에 대해서 좀 더 조사해서 써주셨으면 싶었다ㅠㅠ 연애시뮬에서 연애 외 엔딩은 전부 배드엔딩이기 때문에 여캐들 간의 관계가 그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그오배>는 '배드엔딩'이라는 말이 너무... 속상했음... 퀸로제의 앨리스 시리즈나 도키걸즈 시리즈, 금색의 코르다 시리즈 같은 유서 깊은 오토메 시리즈에 전부 여캐가 공략캐로 등장하고 그 캐릭터들과의 우정 엔딩이 있는데...!!! 게다가 예시로 나온 안젤리크 시리즈에서도 라이벌 여캐가 있고 보좌관 엔딩을 보려면 라이벌 여캐를 공략해서 친밀도를 높여야 하는데, 과연 그걸 단순히 배드 엔딩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짧은 글이어서 전반적으로 주제를 건드리고만 넘어가는 형식이라 아쉬웠다. 좀 더 길고 자세하게 다뤘으면 재밌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조신남/다정남이 몹시 취향이기 때문에 그쪽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취향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평소에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ㅋㅋㅋㅋ) 개인적으로는 여주의 행동을 제한하려고 하는 집착남주를 몹시!! 몹시!!!! 싫어한다. 전에 한 로판 작품에서 섭남(겸 악역)이 주인공에게 불합리한 선택을 강요하고 정신적으로 몰아붙이는 걸 보고 진짜 밤에 혈압 올라서 잠이 안 올 정도로 화가 났던 적이 있었다ㅋㅋㅋㅋ 그때 '왜 고작 소설에 그렇게까지 화가 났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었는데, 그냥 전반적으로 강요받는 것에 대한 엄청나게 강한 반감이 있는 것 같다. 여차저차 강요받는 것이 많았던 성장기를 보내서 그런지... A라고 생각하다가도 남이 A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극대노 상태가 되어 난 A가 싫다고 외치는 청개구리가 된다... 하여간 그래서 나는 집착남이 싫다. 내 의견과 의사를 오롯이 존중하고 공감해주는 남주가 좋다... 이런 식으로 내 '취향'이 나의 어떤 욕망을 가리키는지 생각해보면 재밌는 듯...ㅋㅋㅋㅋ
아무튼 분량도 짧아서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로판 처돌이라면 편한 마음으로 읽어보아도 좋을 듯... ebook도 있는 것 같고!
+) 최근 웹소만 읽고 게임을 못 하고 있는데... 신입사원 4개월차... 퇴근하면 기력이 없다... 그냥 모든 걸 침대에 누워서 하고 싶은데 오토메는 또 외국어라 집중해서 봐야하니까... 조만간 기력을 끌어올려 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