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밥 친구인 드라마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 최근에 OTT에서 본 드라마(피키 블라인더스, 데리 걸스)는 죄다 영국 드라마인데, 다운튼 애비도 마찬가지. 이 드라마는 1910~1920년대의 영국 요크셔의 다운튼 마을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거 다 모인 드라마긴 하다. 내가 창작물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경이 유럽풍(그중에서도 특히 영국), 그리고 빅토리안 시대에서부터 전간기(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쯤 되는 배경이라서ㅋㅋㅋ 사실 내용만 보면 약간 바람 잘 날 없는 대가족의 주말연속극 느낌이다ㅋㅋㅋㅋㅋㅋ 그냥 다소 막장인 주말연속극인데 왜 이렇게 재밌는지...ㅋㅋㅋㅋ 요즘 진짜 과몰입해서 보는 중...
다운튼 애비의 시즌 1은 딸만 셋인 딸 부잣집 그랜섬 백작가의 후계자(백작의 가까운 사촌)와 후계자 아들이 모두 1912년 타이타닉 침몰 사건으로 사망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된다. 원래 첫째 딸인 메리가 그 후계자의 아들 패트릭과 결혼하기로 되어있었는데, 패트릭이 사망함으로써 메리는 패트릭과의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던 그랜섬 백작가의 모든 재산을 잃게 될 상황... 사실상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랑 비슷한 상황이다. 물론 시대는 100년쯤 차이나고 작위도 돈도 없는 젠트리인 베넷 家와는 다르게 크로울리 家는 백작위도 있는 짱짱한 집안이지만... 남자 후계자가 없는 이상 그 백작위도 영지와 함께 머나먼 친척에게 홀랑 넘어가게 생겼다. 그 상황에서 백작인 로버트 크로울리는 후계자로 먼 친척인 매튜 크로울리를 다운튼으로 데려오는데... 가 시즌 1의 대략적인 시놉시스.
현재까지 내 최애 인물은 메리 크로울리다. 얼굴도 예쁘고, 똑똑하고, 무려 백작가의 첫째 딸이기까지 한 당찬 여자. <엠마>의 엠마 우드하우스 마냥 handsome, clever, and rich 그 자체. 본인이 너무나 잘 나서 모두를 깔보고 있는 사람이다ㅋㅋㅋ 근데 그런 메리가 너무나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빼앗기고 나서야 자기가 사실 그걸 원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가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을 장난감 마냥 잠시 내버려두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의외로 미성숙한 면모라든지,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냉철한 가면을 쓰지만 사실은 상처받고 있는 모습도. 근데 둘째 동생 이디스한테는 좀 잘 해주었으면 한다..ㅠㅠㅠ (이디스도 언니한테 못되게 굴지만 언니나 동생만큼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못해서 가족들한테도 은근히 찬밥 취급 받는 거 너무 안쓰러움..)
그리고 매튜 크로울리... 메리가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매튜는 남주격. 백작가 기준 다소 진보적이지만(?) 강단 있고 정말 반듯하고 잘생긴 청년이다. 비록 배우 재계약 문제로 시즌 3에서 많은 배역들이 갑자기 우수수 죽어나며 매튜도 급사할 예정이지만..^^... 매튜가 메리와 틀어진 후 라비니아와 약혼하고, 메리는 칼라일과 약혼하면서 정말 이 둘이 영원히 헤어지게 되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아니었다. (라비니아가 너무 '편리하게' 죽어버린 감이 있지만..ㅠㅠ) 매튜의 프러포즈 장면도 정말 좋았지만, 사실 나는 그것보다 약간 앞 장면을 더 좋아했다. 메리에게 미국으로 가지 말라고 하면서, '그냥 칼라일과는 파혼하고 이 집에 살아라. 내가 후계자인 한 당신이 이 집에서 나가야 하는 일은 없을 거다'라고 말한 게 너무 좋았다. 그냥 칼라일과 파혼하고 나랑 결혼하자, 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간질간질했음ㅋㅋㅋㅋ
그리고 메리의 어머니, 코라도 정말 맘에 든다. (너무 맘에 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일단 진짜 너무 예쁨... 로버트랑 둘이 이야기할 때마다 로버트에 빙의해서 콩깍지 낀 눈으로 코라 바라보는 중... 그랜섬 백작가가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 후계자였던 로버트와 결혼한 미국의 달러 프린세스. 돈 때문에 결혼했지만 결혼 후에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데 부모님들의 결혼전~신혼 스토리가 너무 궁금하다ㅠㅠ 주연들 중에는 유일하게 미국인인데, 그래서 오는 영국인들과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너무 좋음ㅋㅋㅋ 본인이 지참금으로 가져온 돈이 모르는 후계자에게 가는 건 용납할 수 없지만 대대로 살아온 백작저를 버리고 작은 집으로 이사가는 건 전혀 문제 없는 미국인... 그래서 메리가 "어머니는 미국인이잖아요"라고 할 때마다 너무 웃기다ㅋㅋㅋㅋㅋ
드라마의 큰 줄거리는 메리의 신랑감 찾기로 흘러가지만, 이 드라마는 The Crowleys가 아니라 Downton Abbey인만큼 그랜섬 백작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운튼 애비에 살고 있는 모두의 이야기다. 그래서 크로울리 가족 뿐만 아니라 저택에서 일하는 집사와 시녀, 풋맨과 하녀들도 모두 이 드라마의 주요 인물이다. 안나와 베이츠씨의 로맨스도 메리와 매튜의 관계만큼이나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전반적으로 크로울리 집안 사람들은 다 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친절한 사람들이라 그 두 집단 간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영역이고 귀족과 평민이라는 계급의 차에 대한 생각은 완고하지만.
그래서 되게 흠칫 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ㅋㅋㅋ 귀족으로 살아오지 않은 매튜도 처음 다운튼 애비에 후계자로 불려왔을 때는 백작가의 방식(무조건 발렛이 주인의 옷치장을 도와준다든지)에 대해 기함하고 나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데, 백작의 '그럼 이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은 무엇이 되는가,' '우리는 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라는 말을 듣고 백작가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심지어 매튜보다도 더 급진적인 톰은 '당신네들의 옷차림은 나에게 있어선 억압의 상징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결국엔 대부인의 설득(?)에 넘어가 매튜와 메리의 결혼식에서 테일코트를 입게 된다... 이게 뭐랄까... 그게 그 당시 귀족들의 생각이라는 건 당연히 이해가 가지만 그 논리가 드라마 속에서 타당한 것으로 계속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묘하달까...ㅋㅋㅋㅋ 물론 그랜섬 백작가는 새해에 하인들과 함께 파티를 즐길 정도로 온화하고 착한 '좋은 주인'이지만 오히려 그런 사람들만 등장하기에 그런 사회 구조를 긍정하는 느낌이 든다... 윗사람들에게 반기를 드는 오브라이언이나 토마스가 썩 긍정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것도 그렇고. (나도 오브라이언이라면 모를까 토마스는 정이 안 가지만...)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다운튼 애비의 Abbey는 사실 '수도원'이라는 뜻이다. 물론 드라마는 종교와 일절 관계가 없고... 근데 왜 이름에 수도원이 붙었을까 찾아봤는데 무려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했다...ㅋㅋㅋ 헨리 8세가 잉글랜드 국교회를 세우면서 기존의 가톨릭 수도원들을 모두 해산시켰고, 많은 수도원들이 귀족들에게 선물로 내려졌다고 한다. 귀족들은 그 수도원 부지에 저택을 새로 짓거나 수도원 건물을 저택으로 증축하여 사용했고. 그렇게 건물 이름도 따로 바꾸지 않아 영국 대저택들의 이름 중 끝에 Abbey가 붙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처럼...)
그리고 사실 블로그 글 카테고리를 넷플릭스로 해뒀는데 넷플릭스는 아니고 시즌 1~2는 왓챠에서 봤다... 넷플릭스에는 없더라고... 근데 와중에 내가 시리즈 한참 보고 있던 중 10월 말에 시즌 3~6은 왓챠에서 내려감..^^ 덕분에 그 뒤는 (곧 모든 판매가 종료된다는) 시리즈온에서 소장 결제해서 보고 있다. 근데 이놈들은 소장이 5년이더라? 사기꾼 아니야? 그럼 소장이라고 하면 안 되지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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