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야(桜哉) 올클 후기

GAMES/동인 게임

2021. 8. 25.

내 리얼은 너무 충실하다(와타쥬)를 제작한 tetrascope 팀의 전작 사쿠야(桜哉). 와타쥬를 플레이한 이후에 tetrascope 팀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이 가서 이전부터 플레이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발 걸쳐놓은 게임이 사쿠야 외에도 두 개나 되어서 (니어레플이랑 오란소와..) 나중에 플레이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생각나서 유혹에 넘어감^^; 근데 사쿠야 후유증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 나머지 게임 한동안 플레이 못 할 것 같다... 

 

사쿠야 OP. 와타쥬도 그랬지만 사쿠야도 주제곡들이 너무 좋다.

 

와타쥬는 오토메 게임을 좋아하는 여고생이 주인공인 학원물 오토메인만큼 기본적으로 좀 가볍고 통통 튀는 매력이 있는데 사쿠야는 본격적인 tetrascope의 취향 집대성이란 느낌이었다... 일단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내용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와타쥬도 엄청 재밌게 플레이했는데 사쿠야는 그보다도 더 취향이었다. 사쿠야 플레이하면서 눈물을 몇 번이나 쏟았는지 모르겠다...

 

사쿠야는 기본적으로 R18 게임이고 엔딩이 총 6개 존재한다. R15로 나온 버전도 있지만 이쪽은 엔딩이 2개 밖에 없으니 가능하다면 R18 쪽으로 플레이하는 걸 추천.  R18 버전은 880엔, R15 버전은 무료고 둘 다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링크를 통해 구매/다운로드 할 수 있다. R18 버전 기준 공홈에는 플탐 4시간이라고 적혀있는데 난 15시간 정도 걸렸다. (보이스 없으면 겜하기 힘든 외국인..) 

*추가: 현재 공식 홈페이지가 몇 달째 복구 중이라서 접속이 불가하다... Animate Games 쪽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니 참고!

**추가2: 킹갓제너럴 멋있는 능력자분들께서 사쿠야 한국어 패치를 만들어주셨다..! 일본어로 게임하는 게 어려우신 분들도 한패 깔아서 꼭..!

 

 

이하 R18 내용 주의!

 

주요 등장인물은 크게 3명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셋 다 이름이 식물 이름. 

 

쿠죠 아카네 (九条茜)

「아마 사쿠야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일 거야」

이 작품의 주인공.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일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아버지는 천재적인 기계공학박사지만, 5년 전 쯤에 사별.

그 이후, 사쿠야와 둘이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슬슬 '결혼'이라는 단어가 신경쓰이는 나이.

 

사쿠야(桜哉)

「스스로 메스를 댈 수 있으면 좋을텐데」

주인공의 아버지의 손에서 태어난 인간형 로봇.

다소 감각이나 발언에 차이는 보이지만, 뇌의 기능은 거의 인간과 똑같다.

안드로이드로서 지극히 특수한 사례라고 한다.

성격은 몹시 마이 페이스인 데다가 털털하다.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일은 거의 없다.

밖에는 거의 나가지 않기 대문에, 주인공을 대신해서 가사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영화감상과 독서가 취미이자 지식의 원천.

 

우에무라 신(上村榛)

「안드로이드와 섹스할 수 있어?」

유치원 시절부터 주인공의 소꿉친구.

로봇 개발의 탑 기업인 넥스트로이드사의 1년 차 신입사원이다.

머리가 좋고, 쿨하고 고지식하다. 주인공과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첫 재회.

뭔가 사쿠야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공략 캐릭터 아님)


사쿠야는 특이하게도 공략 캐릭터는 사쿠야 한 명 밖에 없다. 그래서 Ending 1~6까지 총 6가지 엔딩이 모두 사쿠야 엔딩. 나 같은 경우에는 초회차는 공략 없이 플레이했고, 그 이후에는 공략을 보고 했다. 내 플레이 순서는 2-3-6-4-5-1. 대충 해피/굿/배드 엔딩으로 나눠뒀는데 사실 공식에서 나눠준 건 없고 내 맘대로 분류했다.

 

사실 공식에서 내준 공략 차트가 있지만 적어도 첫 회차는 공략 없이 플레이해보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해피 엔딩인 Ending 1은 될 수 있다면 맨 마지막에 플레이하는 걸 권장.

 

Ending 2 (배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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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涙)

 

공략 없이 내가 생각하는 선택지를 눌러서 처음 본 엔딩이 하필이면 배드 엔딩이었고 그만큼 더 충격적이었다... 이 엔딩 보고 난 이후에 난 쓰레기라며 울면서 자책했음... 

 

게임을 하기 전에는 R18 여성향 게임이다 보니 '인생 첫 야겜 해봐야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엔딩을 보고 생각이 싹 바뀌었다. 보통 야겜은 에로씬이 목적이고, 여성향 로맨스 문법에서 에로씬은 주인공과 공략캐의 관계의 진척과 결과를 보여주는 장치이다. 그런데 이 엔딩의 에로씬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 엔딩은 '그린 듯이 이상적인' 답변을 했을 때 볼 수 있는데 ('사쿠야는 그냥 사쿠야야' '사쿠야는 인간이야') 이처럼 일반적인 로맨스 문법에서 정답으로 여겨지는 답변을 하는 플레이어(나 포함)는 사쿠야의 반응 또한 로맨스 문법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동 후 애정 넘치는 섹스신을 기대하고 있던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것은 사쿠야의 싸늘한 눈빛뿐... 그래서 아카네(그리고 플레이어) 혼자 발정 난 짐승 같다는 느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로맨스 문법이 깨지니까 에로씬이 전혀 야하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오히려 충격과 공포만 남았다. 특히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플레이어가 단순히 스토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를 통해 직접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더더욱 '내가 사쿠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ㅠㅠ;;

 

이 엔딩을 보고 사쿠야가 왜 R18 게임이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엔딩에서 섹스씬이 없었다면 이렇게 명확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향 에로 콘텐츠에서 주로 남캐는 여주(그리고 플레이어)의 로맨스적, 성적 욕망을 눈치껏 채워주는 존재고, 그래서 여주를 사랑하고 갈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 엔딩에서 사쿠야는 말 그대로 '물건'으로서 존재한다. 사쿠야는 성적인 쾌락을 느낄 수 없는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에 관계 중에도 그냥 담담하게 아카네를 쳐다보고 있고 아카네만 열심히 움직이는데, 이 장면을 보면 '아 이건 섹스가 아니라 그냥 아카네의 자위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상태의 사쿠야는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섹스용 안드로이드와 다를 바가 없다. 사쿠야는 아카네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카네가 원하는 환상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아카네가 사쿠야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사쿠야에게 인간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것에 맞춰서. 

 

특히 그 다음날 아침 사쿠야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데, 이 장면이 엔딩 제목과 딱 맞는다. 통상적으로 많은 스토리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아마 플레이어들은 (나 포함... 2) 사쿠야를 인간으로 대하는 답변을 골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스토리에서 눈물이라는 감정적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은 인간에 한 발자국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변화다. 그렇지만 눈물 흘리는 사쿠야는 전혀 기뻐하지 않으며 오히려 당황하고 무서워하며 아카네에게 제발 이걸 멈춰달라고 부탁한다. 사쿠야는 애초에 인간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카네와 플레이어가 사쿠야를 인간으로 대하는 건 결국 인간이 아닌 사쿠야가 인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인간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사쿠야는 그 전에도 인간으로 취급당하면 안드로이드로서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다고 하면서 인간으로 취급되는 것을 무서워했었다. 그걸 생각하면 이 엔딩에서 사쿠야가 "멈춰줘, 아카네"라고 하는 건 눈물뿐만이 아니라 점점 사라져 가는 '하루키가 아닌 사쿠야'로서의 자의식도 포함된 게 아니었을지... 

 

Ending 3 (굿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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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로봇(人間とロボット)

 

이 엔딩을 보고 엔딩 2에서 사쿠야가 왜 '사쿠야는 인간이야'라는 아카네의 답에 실망했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사쿠야 세계관에서 사람들은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싫어하는 '박멸파'와 안드로이드에 애정을 쏟는 '애호파'로 나뉜다. 박멸파의 사람들은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비슷하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혐오한다. 반대로 애호파는 자신들이 안드로이드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맘대로 다루어도 자신을 내치지 않는, 자신이 절대적 우위를 쥘 수 있는 대상을 원할 뿐이다. 즉, 박멸파와 애호파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드로이드에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투사하고, 안드로이드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해낸 후 멋대로 좋아하거나 미워한다. 그러나 사쿠야는 이미 오랜 고민 끝에 스스로를 안드로이드라고 정체화했고, 인간으로서의 사쿠야를 바란다면 사쿠야가 아닌 다른 존재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충격적이고 강렬했던 대사는 사쿠야의 "인간에 의해 만들었는데도, 인간에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쪽이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단순하게 슬펐어. 그래서 난 인간을 동경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드로이드인 자신이 좋아"라는 대사였다. 게임 내에서도 여러 번 나오지만 사쿠야는 인간과 동일한 지능과 사고 회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로봇과 인간 그 중간지대에 있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인간과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사쿠야는 스스로를 안드로이드로 생각하고, 안드로이드를 넘어서 스스로를 '물건'으로 생각한다는 점이 충격이었다. 사실 항상 '상대를 물건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라'라고 교육받기 때문에 사쿠야를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나도 모르게 심리적 저항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데에는 꼭 상대를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아직 현실에는 사쿠야와 같은 안드로이드는 없지만 동물권에 대해 생각해볼 때도 유의미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와타쥬에서도 그랬지만 tetrascope 팀이 말하는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인 듯하다. 와타쥬에선 공략캐와 노조미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무엇보다도 노조미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스토리였다. 그렇지만 사쿠야에서는 공략캐인 사쿠야가 주인공인 아카네의 모든 것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아카네가 과연 사쿠야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지 시험하는 스토리라는 느낌. 그리고 엔딩 3에서 아카네는 결국 '나, 애호파도 박멸파도 아니야. 로봇을 로봇으로서 좋아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며 사쿠야를 있는 그대로, 사람이 아닌 안드로이드로 존중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이 엔딩에서 아카네는 사쿠야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는 못 했기 때문에 여태까지와 같은 가족 같은 관계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엔딩 제목처럼 인간과 로봇으로서,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깨닫는 엔딩. 

 

Ending 6 (배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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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로서(アンドロイドとして)

 

엔딩6 후반부 내내 이러고 플레이함...

이걸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내 인생 최고로 충격적인 엔딩이었다. 원래 내 인생 충격적인 게임 엔딩 리스트 1위는 니토마타 3회 차 엔딩이었는데 사쿠야가 단숨에 갱신해버렸다... 솔직히 모든 게 충격적이라서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桜哉は後ろにいる라는 신의 대사에서 차마 그 뒤를 못 보겠어서 겜을 끄고 한 시간 반 동안 울었다... 그리고 좀 있다가 진정한 뒤에 나머지 내용을 봤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고 절망적이어서 그 이후에도 두 시간을 내리 울었다.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데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고 너무 잔인해서 지금도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 나고 멀미 나는 엔딩... 사실 아직까지도 생각이 제대로 정리가 안 돼서 엔딩 6 후기는 유독 더 두서없는 아무 말인 듯...

 

사쿠야가 결국은 아카네에게 "날 죽여줘"라고 말하는데 아카네가 그럴 수는 없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아카네는 상냥하네"라고 말한다. 그런데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고 이 부분을 보고 있던 때에도 사실상 "아카네는 잔인하네"로 들렸다... 사쿠야는 아카네에게 나쁜 말은 하나도 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나중에 엔딩 1의 엔딩곡 부분에 사쿠야의 과거이자 진상이 나오는데 그걸 알고 나니 더 괴로워졌다. 쿠죠 박사가 아카네에게 "사쿠야와 떨어지게 되는 날이 온다면 네 손으로 사쿠야를 처분하렴"이라고 했던 말은 사실 사쿠야의 바람이었던 것. "아카네와 떨어지게 된다면 아카네의 손으로 죽고 싶어요"라고 했던 게 사쿠야의 마지막 바람이었는데 잔인하게도 엔딩 6에서는 그 마지막 바람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카네가 사쿠야를 처분해주지 않으니 사쿠야는 신에게 가서 목숨을 끊어달라고 부탁한다. 아카네에게 자신을 부정당하고, 아카네를 상처 입히기까지 했으며, 마지막 소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제일 잔혹한 엔딩.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스스로를 잃어버린 엔딩 2와는 다르게 엔딩 6의 사쿠야는 사쿠야인 채로 끝날 수 있었다는 걸까. 

 

桜哉は後ろにいる라는 대사가 너무 끔찍해서 여기서 겜을 끄고 한참 쉬었는데... 이것보다 더한 것이 뒤에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桜哉は死んだ라고 했으면 그렇게까지 충격받지 않았을 것 같은데, 사쿠야가 트렁크 안에 있다는 대사에서 그전에 신이 버그 난 순찰용 로봇을 트렁크에 쑤셔 넣던 장면이 생각나서 너무 괴로웠다. 근데 막상 트렁크를 열어보니 그것조차 아니었음. 사쿠야는 이미 '처분'당했고 일부 부품만 작은 상자에 남겨져있었다. 근데 이 장면이 너무 사람 유골함 같아서 괴로웠다... 화장 후 유골함에 담는 장면을 보면 정말 말 그대로 SAN치 체크를 당하기 때문에...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 사실은 이런 '물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어서, 사람이 뼈와 살로 이루어져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도 마치 1+1=3이라는 말을 들은 것 마냥 세상이 뒤집히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아카네가 사쿠야의 잔해를 발견하는 과정이 너무 똑같았다... 내게 소중했던 존재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뼈와 잿 덩이, 혹은 단순히 0과 1과 금속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너무 충격적이고 잔인하다...  

 

이 엔딩이 사쿠야와 아카네 둘 다에게 엄청 자기 파괴적인 엔딩이라고 느꼈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쿠야는 아카네를 억지로 안았던 일을 신에게 이야기하면서 "나는 최악인 기분이었어" "난 인간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역시, 부러웠던 걸지도 몰라. 아카네를, 인간 여성의 본능적인 부분까지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이." "어쩌면, 나에게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아카네를 안았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이 너무 슬펐다... 이 엔딩에서 사쿠야에게 아카네와의 섹스란 자신이 인간이 아님과 동시에 어떻게 해도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행위다. 거의 자해 아닌가 싶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로봇이라는 정체성)가 아카네와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으니까 사쿠야는 결국 아카네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거... 아카네의 경우에는 사쿠야가 처분당한 걸 알고 이후에 사쿠야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들여서 함께 산다. 이 엔딩의 제목이 recur인데 recur에 회상이라는 뜻도 있고 재발(再發)이라는 뜻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하루키와 닮게 만들어진 사쿠야, 그리고 사쿠야와 닮게 만들어진 또 다른 로봇. 결국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하루키의 엄마가 하루키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곁에 두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카네도 사쿠야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사쿠야 대신 곁에 두게 되는데, 이런 일이 결국은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게 아니라는 점이 너무 슬프다. 사쿠야와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를 보면서 아카네는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게 아니라 '이 로봇은 사쿠야가 아니다'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끼고 자신을 자책하고 있겠지... 게다가 사쿠야는 스스로 처분되기를 결정함으로써 아카네와 신 모두와 작별했고, 아카네와 신도 원래는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사쿠야의 일이 있으면서 소꿉친구라는 관계도 끊겨서 각자 외톨이가 되었을 것 같다. (솔직히 신이 잘못한 건 없지만 너무나도 야속했다. 나 같았으면 신 앞에서 자살했다...... )

 

엔딩 6의 마지막 CG는 영원히 못 잊을 것 같다. 엔딩6 전용 주제곡 recur(회상)도 그렇고... 창문에 기대고 조용히 이야기하던 사쿠야는 여태까지의 추억을 되짚어보고 있었던 걸까... 

 

사실 마지막에 아카네가 사쿠야와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와 함께 살고 있는 걸 보고 '사쿠야는 안드로이드로서 죽은 걸까? 산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죽은 게 아니라 부서진 것'이란 얘기를 트친 분께 듣고 내 머리를 몹시 때렸다... 사쿠야가 "난 안드로이드로서 올바른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라고까지 했는데 나란 새끼는...!!!!!!!

 

Ending 4 (굿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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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ボーダーライン)

 

이 앞에서 본 엔딩에서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였는데, 사람이 '사람이 아닌 존재'를 사랑한다는 일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나와서 좋았다. 보통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로맨스에서 다뤄지는 어려움은 수명의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 사쿠야에서는 사회적인 인식과 개인적인 두려움을 담았다는 게 특이한 것 같다. "사쿠야가 안드로이드면 싫은 건가?"라는 신의 질문에 아카네는 선뜻 아니라고 답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회적인 인식이 좋지 않은 '애호파'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상식 밖의 일에 몸을 담고 싶지 않아서. 그전까지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어서 깜짝 놀랐다.

 

사실 사쿠야는 안드로이드지만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완벽하게 인간이고, 사쿠야가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위험하기 때문에 아카네가 숨기고 싶었다면 그 사실을 숨기고 평범한 커플처럼 생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릴 적 말했던 "사람은 사람하고 밖에 결혼할 수 없어"라는 말처럼 아카네는 자기 마음속의 공포를 이기지 못한 것 같다. 사쿠야가 워낙 사람 같아서 평소에는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지만 '로봇'과 결혼한다고 하면 거리껴지는 게 사실이니까. 현실에 대입해보면 보이스 나오는 등신대 피규어와 결혼하는 사람 같은 느낌이 아닐까...; 이건 사쿠야를 너무 로봇으로만 보아서 사쿠야를 사쿠야 그 자체로 보는 데에 실패한 엔딩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엔딩 4는 엔딩 5와 페어 엔딩이라고 생각하는데, 엔딩 5에서 사쿠야와 아카네가 말하기 전에도 서로의 생각을 알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엔딩 4에서 둘 다 서로의 감정을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엔딩 제목 '경계선'처럼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경계선은 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이전처럼 가족으로 살아가는 엔딩... 조금은 위태로운 결말이 아닌가 싶었다. 

 

Ending 5 (해피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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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형태(共在の形)

 

아카네와 사쿠야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가능하다면 널 더 알아가고 싶어'라는 서로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카네는 로봇을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실이 "아직 무서워."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아닌 사쿠야가 좋아. 그러니까 조금 기다려줘."라고 사쿠야에게 말해줄 수 있다. 그 순간의 아카네와 사쿠야의 관계를 "조그만 거리를 두고, 침대를 공유한다. 그 거리가 없어질 때까지, 분명 정말로, 아주 조금이겠지."라고 표현하는 아카네의 독백이 너무 좋았다.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 했지만, 언제까지고 서로를 믿고 기다려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카네와 사쿠야의 오래된 유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정말 이 부분 보고 테트라스코프 무서울 정도로 글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딩 4에서 극복하지 못한 공포를 마주하고 조금씩 천천히 극복해나가기로 하는 엔딩. 사람이 아닌 로봇을 사랑한다는 공포감은 사회적인 시선뿐만 아니라 '내가 혼자 허상을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온다고 생각하는데, 신기하게도 사쿠야의 엔딩은 그것과 반대다. 사쿠야를 인간으로 보고 사랑하고자 하는 엔딩 2에서는 아카네가 허상을 바라보며 혼자서 '나는 사쿠야를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사랑한다'라는 생각으로 자기 위로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반면에 무생물을 사랑한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쿠야를 안드로이드로 바라보았을 때만 둘이서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쿠야의 다정함이 돋보이는 엔딩이라고 생각했다. 아카네와 사쿠야가 둘이서 하루키와 쿠죠 박사의 무덤을 찾아가는데, 사쿠야가 "박사님한테 무슨 보고를 했어?"라고 물어봤을 때는 아카네가 "비밀-"이라고 장난스럽게 답하지만 아카네가 "사쿠야도 아빠한테 뭔가 얘기했어?"라고 물어봤을 때 사쿠야는 "응. 아카네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라고 제대로 답한다. 당연히 사쿠야도 "나도 비밀이야"라고 장난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언제나 아카네에게 진심으로 부딪혀오는 사쿠야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엔딩 1을 보면 엔딩 영상으로 주제곡 중에 gift가 나오는데 사실 나는 엔딩 5에 이 노래가 더 어울리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受け取ることしかできない僕に

받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나에게
君は静かに微笑んでこう言う…

너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해...

いますぐ会いに行くから

지금 바로 만나러 갈 테니까
そのままでいて

그대로 있어줘
君がいてくれるなら

네가 있어준다면
見失わないんだ

놓치지 않아

 

특히 이 부분은 아카네가 사쿠야에게 "인간이 아닌 사쿠야가 좋아. 그러니까 조금 기다려줘."라고 했던 것과 딱 맞는 것 같아서ㅠㅠ

 

Ending 1 (해피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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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家族)

 

이 엔딩의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엔딩에서 아카네는 사쿠야와의 관계가 가족이자 친구인 사이에서 연인으로 변하는 걸 두려워했는데, 결국 그 과정을 거쳐도 똑같지만 새로운 '가족'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좋았다. 

 

이 엔딩에서 유일하게(ㅠㅠ) 행복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에로씬들이 나온다... 사쿠야는 다른 엔딩들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쾌락을 느끼지 못 하지만 서로 맞춰가면 된다는 메시지가 좋았다. 사쿠야에게 육체적인 욕구는 없지만 '아카네를 알아가고 싶다'라는 욕망은 있기 때문에 사쿠야도 아카네와의 섹스를 통해 성적 쾌락이 아닌 정신적인 충만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중간에 엔딩 2와 같은 체위가 나오는데 전혀 다른 느낌이라서 그 대비가 좋았다. 섹스에 있어서 육체적인 쾌락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는 야겜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좋았다.

 

에로씬 중 한 장면에서 사쿠야는 평소에 아카네가 자주 입에 올리던 "사쿠야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일 거야"라는 말을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이네"라고 돌려주는데, 이 문장이 어떻게 보면 이 게임의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충분히 서로를 존중하고 맞춰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 만약 기적적으로 이 엔딩에서만 사쿠야가 사람처럼 성적인 쾌락을 느끼게 되었다면 그 감동이 덜 했을 것 같다. 오히려 조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한계 속에서 충분히 서로를 존중하며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결말이 나와서 감동이었다... 

 

일반 메인 화면과 올클 이후 메인 화면

그리고 엔딩 올클하면 메인 화면이 바뀐다. 엔딩 1을 마지막으로 보고 나서 바뀐 메인 화면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저 감동의 쓰나미...ㅠㅠ (난 실수로 엔딩 3이랑 6이 기록이 안 돼서 다시 본 뒤에야 떴지만...ㅋㅋㅋㅋ)

 

Sweet Present for Shin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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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게임 초반에는 신을 싫어했다. 당연한가... 초반부터 사쿠야를 8억 엔에 팔라고 하는 놈이 예뻐 보일 리 없다...ㅋㅋㅋㅋ 그렇지만 본편 플레이하면서 신이 아카네보다 더 사쿠야를 '사쿠야'로 대해주고 있었던 것도 있고, 배드 엔딩에서 미운 정든 것도 있고... 게다가 무엇보다도 절대로 아카네랑은 이어질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게 짠했다. 유일하게 아카네와 이어질 뻔했던 엔딩은 그 모양 그 꼬라지고... 결국 아카네는 연애적으로 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고 둘은 어떻게 해도 이어질 수 없었던 거겠지. 

 

아무튼 그래서 본편 플레이 다 하고 외전 게임을 받아서 플레이했다. 플레이 감상은 '이 녀석 학창 시절 때부터 참 짠하구나...' 고등학교 시절의 신에게 발렌타인 데이 겸 생일 선물을 챙겨주는 내용의 외전인데, 선택지에 따라 총 세 갈래로 엔딩이 나뉜다. 그중에 특히 No Present 엔딩이 있는 게 재밌었고 또 짠했다... 사쿠야가 예상했던 대로 신은 선물 없이 그저 '생일 축하해'라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기뻐해 주는 아이였어서...ㅠㅠ  그리고 세 엔딩을 모두 회수하고 나면 어른이 된 이후에 다시 한번 사쿠야와 아카네가 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네 번째 엔딩을 보게 된다. 사쿠야와 아카네가 행복해 보이니까, 이 마지막 엔딩을 보게 되는 상황은 아마 최소 굿 엔딩 이상의 엔딩을 본 상태겠지..? 엔딩 1, 2를 제외하면 아카네가 신의 고백을 받기 때문에 그 이후에 역시 불편해졌으려나 싶은데, 그래도 그 세 명이 여전히 불편하지 않은 소꿉친구 관계로 남을 수 있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쿠야와 아카네가 너무 찐 사랑이라 아카네 옆에 신을 위한 자리는 없었지만 신도 행복해졌으면...

 

기타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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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뻘소리지만... 아무리 8년 전 게임이라지만 애들 옷이 너무 구려..!ㅋㅋㅋㅋㅋ 와타쥬 때도 그랬지만 사쿠야는 더 한 것 같다. 와타쥬에서 슌의 기린 무늬 티셔츠로 고통받았는데 사쿠야에서는 그냥 신 빼고 전원 옷차림이 이상해...ㅋㅋㅋㅋㅋㅋㅋㅋ 신은 맨날 교복이나 양복만 입고 나와서 그나마 나아...ㅋㅋㅋㅋㅋㅋㅋㅋ


사쿠야가 사람이 아니라 안드로이드로 남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만들어진 후 초반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사쿠야는 하루키가 갑작스레 죽은 후 하루키를 되살려달라는 하루키의 어머니의 부탁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결국 하루키의 어머니로부터 "넌... 하루키가... 아니네." "역시 안 되겠어...! 로봇 따위, 사랑할 수 없어...!!"라는 말을 듣고 다시 쿠죠 박사에게 돌려보내진다. 그러자 처음에 하루키(사쿠야)는 쿠죠 박사에게 자신의 존재 의의가 사라졌으니 부숴달라고 말한다. 그 부탁이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나는 하루키가 아니야. 하루키가 아니에요. 제 안의 하루키를 지워주세요"라고 한다. 그러나 하루키의 장기만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해서 결국 얼굴을 바꾸는 것으로 협의를 본다. 그때 아카네가 골라준 파란색으로 눈 색을 바꾸는데, 쿠죠 박사가 "인간으로서는 부자연스러운 색이다"라고 걱정하자 "괜찮아요. ...부자연스러워도, 괜찮아요. 그 애가 골라준 그 색이 좋아요."라고 해서 결국 특이한 파란색 눈을 갖게 된다. 하루키가 아닌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을 대표하는 게 지금 사쿠야의 트레이드 마크(?)인 부자연스러운 파란색 눈이고, 그 눈을 볼 때마다 사쿠야는 '나는 하루키가 아니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되새겼을 것 같다. 엔딩 1과 2에서 "아카네가 좋아하는 건,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하루키를 사랑하는 거야"라고 하는 것처럼, 아마 사쿠야에게 '인간으로 취급받는 것'은 '사쿠야가 아닌 하루키로 인식당하는 것'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 인식되는 것이 불편하고, 그럴 때마다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안드로이드로 남아있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얼굴을 바꾼 후 "그치만 너, 하루키가 아니잖아? 하루키가 아니라면, 이름을 바꿔야지"라는 아카네의 말에 이름도 '사쿠야'라는 새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봄나무(春樹)로부터 태어난 벚꽃(桜哉)이 새로 받은 이름. 아카네는 어릴 적에 아무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일 거라고 부끄러워하지만 사쿠야는 "아카네는 아무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름을 지어줬을 때 난 내 자아를 하나의 확립된 존재로서 확인받은 기분이 들어서, 엄청, 기뻤어. 뭐든지 어정쩡했던 나에게, 나로서의 존재 이유를 부여해줘서, 고마워. 네가 있는 세계에 태어나서, 다행이야"라고 말한다... 사쿠야 OP microcosmos 가사에 딱 그 부분이 나와서 정말 좋았다ㅠㅠ  

 

光の色を知った

빛의 색을 알았다
けぶる景色と銀色の影

그을리는 경치와 은빛 그림자
求められた形は

요구받은 형태는
僕だけど僕じゃない姿

나지만 내가 아닌 모습

冷えた空気を吸った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冬の匂いは覚えているよ

겨울의 냄새는 기억하고 있어
誰かの夢を見てた

누군가의 꿈을 꾸고 있었어
僕だけど僕じゃない頃の

나지만 내가 아니었던 때의

君がもし望むのなら

네가 만약 원한다면
何もかも捨てたっていいよ

뭐든지 버려도 좋아
意味なんて分かっているんだ

의미는 알고 있어
それでもいい 夢でもいいよ

그래도 좋아, 꿈이라도 좋아
ここにいる この瞬間

여기 있는 이 순간
刻まれる 僕と君の鼓動

새겨지는 나와 너의 고동
存在を確かめている

존재를 확인해줘
他の誰でもない自分の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深く沈んだ 記憶を宇宙に

깊이 가라앉은 기억을 우주(바다)에
曖昧な境界 崩れる定義

애매한 경계(선) 허물어지는 정의
一つの答え 聞かせてほしい

하나의 답을 들려주면 좋겠어
君の見てる僕は何だろう

네가 보고 있는 나는 무엇일까

はじまりは

처음은
君の声 僕にくれた

네 목소리 나에게 주었던
僕だけの 僕の為だけの

나만의 나만을 위한
意味のない言葉でもいい

의미 없는 말이라도 좋아
一つ一つが僕になるから

하나하나가 내가 되니까
この時が続くのなら

이 시간이 계속된다면
何度でも繰り返してほしい

몇 번이고 반복되면 좋겠어
君が今僕を呼ぶから

네가 지금 나를 부르니까
僕はただ ここにいるんだ

나는 그저 여기 있어

 

게다가 microcosmos라는 제목부터 '소우주'라는 뜻이니까... 사쿠야에게 아카네란 자신의 존재의의를 만들어준 사람이자 사쿠야의 세계 그 자체란 뜻 같아서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ㅠㅠ


사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의 이야기는 정말 오래된 소재다. 흔히 SF 소설의 시초라고 부르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도 빅토르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만들어낸 괴물의 관계를 다루고,  그 이후 비슷한 주제를 다룬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왜냐하면 사람은 타자와 자신을 구분함으로써 자신을 정의하고자 하고, 복제 인간이나 인간형 로봇 같은 소재를 통해서 사실은 그 피조물의 본질이 아닌 인간의 본질을 정의하고자 하니까. 인간과 한 없이 가까운 피조물의 존재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인간인가? 「블레이드 러너」의 레이첼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인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런데 「사쿠야」는 그 질문에 완전히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당사자가 스스로 인간이라고 느끼면 인간인 것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죽은 인간의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임에도, 레이첼은 인간이고 사쿠야는 안드로이드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당사자가 아닌 인간에게 감히 그들이 인간인지 아닌지 판단할 권리는 없다. 그러한 권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오만하고 인간 중심적인 시선이라는 것이 이 게임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사실 그래서 사쿠야 스토리는 퀴어적으로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자신의 정체성은 남이 아닌 자신이 정하는 것이고 그 권리는 어느 누구도 건들 수 없다는 메세지 때문에... 한국 쪽 웹툰 중에서도 안드로이드=무성애자로 읽어낼 수 있는 웹툰이 있었는데 성적인/육체적인 쾌락을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웹툰을 보면서 사쿠야가 많이 생각 났었다. (맞나? 사실 그 만화 본지도 좀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 아무튼 내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 말 얹기가 조금 조심스럽긴 하지만 계속 들었던 생각.


정말 내 2n년 인생 최고의 게임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진짜로 진심이라 볼드체로 강조함) 게임에 이렇게까지 몰입한 것도 충격받은 것도 다 처음이었다. 사쿠야가 2013년 출시됐는데 사쿠야를 모르고 살았던 8년이 아까울 정도로... (물론 그땐 애초에 내가 오타쿠도 성인도 아니었어서 플레이 못 했겠지만.. 어쨌든) 와타쥬 때도 그랬지만 tetrascope가 만드는 이야기가 정말 너무너무 취향이다. 와타쥬도 사쿠야도 둘 다 배드 엔딩 보고 너무 놀라서 펄쩍 뛰기는 했었는데 그래도...

 

tetrascope는 곱씹을수록 더 좋아지고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게임을 만드는 팀이다. 왜냐면 배드 엔딩이 단순히 '매운맛'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극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개연성 있는 비극이고, 해피 엔딩도 동화 같은 완벽한 해피 엔딩이 아니라,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 속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라서. 게다가 배드 엔딩의 경우에는 누가 악의를 가지고 일을 벌이는 게 아닌데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선의 때문에 모든 게 망가진다는 점이 너무 가슴 아팠다. 이런 스토리, 이런 연출이 동인 게임에서 나왔다는 게 한편으론 믿기지 않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동인 게임이니까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상업 오토메 게임 만드는 회사들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 근데 tetrascope 당신들 왜 17년 이후로 소식이 없어...? 내 취향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어디로 간 거야... 5년째 감감무소식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돌아와......!!!!!!!!!!!

 

사실 사쿠야 해피 엔딩까지 전부 다 회수했는데도 배드 엔딩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샤워하다가 울고, 산책 나갔다가 울고, 자려고 누웠다가 울고... 사쿠야 금방 끝내고 금방 오란소와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달달한 걸로 멘탈 수습 좀 해야 할 것 같다... 

 

 

 

+) 사쿠야 아이폰/아이패드에서 플레이하는 법

 

[참고] Nscripter 기반 게임 iOS에서 플레이하는 법

*내 리얼은 너무 충실하다(私のリアルは充実しすぎている) 기준* 나는 데스크탑 유저라서... 가벼운 겜은 컴으로 플레이하는게 몹시 귀찮다...... 누워서 겜하고 싶은데 데스크탑으로 겜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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