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미사(Midnight Mass) 후기

HOBBIES/넷플릭스

2021. 10. 15.

오랜만에 재밌게 본 넷플릭스 시리즈 <어둠 속의 미사>. 1시간씩 7화로 이루어진 드라마라서 이틀만에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일단은 공포물로 분류되어 있긴 한데, 나 같은 쫄보도 볼 수 있는 것 보면 (물론 중간 중간에 너무 무서우면 다른 데 보고 있긴 했음..ㅋㅋㅋㅋㅋㅋㅋ) 아무나 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공포 영화/드라마를 정말 딱 세 편만 봤는데 전부 종교나 오컬트 관련인 걸 보면 내가 이런 소재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농담으로 맨날 신성모독 맛집 찾아다닌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무교지만 종교에 대한 문화적/철학적 관심은 있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ㅎㅎ

 

재밌었던 것과는 반대로 베브 킨 때문에 엄청 짜증나는 드라마기도 했다ㅋㅋㅋㅋㅋㅋ 벽에다 대고 말해도 이것보다 나을 것 같은 광신도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수 있을 듯. 베브를 보면서 중학교 때 가정 선생님이 생각났는데ㅋㅋㅋ 이 선생님은 공립 중학교에서 수업시간을 할애해 성경은 진리이며 진리가 아닌데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될 리 없다고 구구절절 설명하곤 했었다... 그래서 들으면서 '지랄 났네 그럼 해리포터도 다 진짜로 있었던 일인가'하고 속으로 궁시렁거렸던 기억이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그거 교육청에 찔렀어야 했는데. 하여간 수동공격적으로 타종교를 깎아내리고 자신의 종교, 더 나아가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못난 사람들은 어디나 있는 듯. 이들은 그 누구보다 종교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사실 이들에게 종교는 그저 자기 자신을 정당화할 수단에 불과하며, 따라서 종교적 가르침을 맥락에 관계 없이 오려 붙이듯 써먹는다. 그렇게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추했던 캐릭터. 

 

결론 없는 단편적인 감상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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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큰 주제는 '부활'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주요 시간적 배경도 부활절 근처고 (뭔가 정식 용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폴 신부도 크로켓 섬을 부활시킨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조셉 캠벨의 영웅신화의 구조에서 영웅은 크게 출발-입문-귀환이라는 세 단계를 거친다. 즉, 영웅은 출발 단계에서 모험을 위해 출발하고 기존 사회와 단절되며, 입문 단계에서는 각종 시험과 고난을 겪게 되고, 마지막 귀환 단계에서는 영웅이 원래 속해있던 기존 사회로 금의환향하여 다시 녹아들게 된다. 그리고 기독교(특히 가톨릭)의 부활에 대한 믿음도 같은 순서를 따른다. 사람은 죽게 되면 죽음이라는 긴 여정을 떠나게 되며(출발; 폴 신부도 죽음을 계속 여정이라고 표현함), 연옥에서 죄에 상응하는 고난을 받아 죄를 용서 받고(입문), 최후의 날 부활을 통해 기존 사회로 돌아온다(귀환). 특이하게도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일리와 에린 모두 사회적 성공을 위해 크로켓을 떠났지만 금의환향하는 대신 실패해서 되돌아오는 인물들이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안 나지만 1화에서 '천사'를 목격한 주민 한 명이 "알바트로스 같이 날게 큰 새가 지나갔어"라고 하자 다른 한 명이 "알바트로스는 불운을 가져온다고. 나 같은 어부들은 다 알지"라고 대답하는데, 이는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의 '노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에 대한 레퍼런스다. '노수부의 노래'에서 알바트로스는 원래 배를 태풍으로부터 구해주는 상서로운 새지만, 노수부가 알바트로스를 쏘아죽인 이후 배에 안 좋은 사건들이 몰아치자 분노한 선원들은 죽은 알바트로스 시체를 노수부의 목에 걸어준다. 즉, 알바트로스는 죄에 대한 낙인, 죄책감을 상징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알바트로스로 착각당한 천사에 의해 피를 빨린 폴 신부는 오히려 그 후 죄책감이 사라져버린 것. 조를 살해하고 피를 마실 때 죄책감을 하나도 느끼지 못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신이 인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사람은 처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인데 죄라는 감각을 잊어버린 사람이 더 이상 가톨릭 교리의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일리가...


라일리와 하산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내가 생각하는 종교관에 제일 가까웠던 것 같다. 인생이란 원래 허무한 것이고 신앙활동이란 그것을 견디기 위해 삶에 의미를 덧씌우려는 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래가 인상 깊었던 구절들. 

 

"Because you're right, there is so much suffering in the world. So much. And then there's this higher power. This higher power who could erase all that pain, just wave his hand and make it all go away, but doesn't? (...) We can watch so many people just slip into these bottomless pits of... of awful and we can stand it. We can tolerate it because we can say things like, "God works in mysterious ways." Like there's a plan? Like something good's gonna come out of it? (...) And the only thing, the only fucking thing that lets people stand by, watching all this suffering, doing nothing, doing fucking nothing, is the idea that suffering can be a gift from God. What a monstrous idea, Father." 

 

"If He decided that He was gonna heal some people and not others, if He chose to spare some and not others, if He handed Leeza Scarborough a miracle, but let a child die of a brain tumor across the way in the mainland... That's not how God works." 


"In the Bible it says, "The sparrow will not fall to the ground, not even a sparrow, without God knowing." He feels every death. I was in South America, in my youth, on a mission. Every moment of every hour of every day, a deluge of death, so loud, how could he hear my whispered prayers over that thundering roar of deaths? I thought, "Oh. That must be what it's like for God." 

"And I am the lightening that jumps between. I am the energy firing the neurons, and I'm returning. Just by remembering, I'm returning home. And it's like a drop of water falling back into the ocean, of which it's always been a part. All things... a part. All of us...  a part. (...) And that's what we're talking about when we say "God." The one." 

 

4화와 7화에서 라일리와 에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특히 7화의 에린이 죽기 전 떠올리는 대화에서 나온 '신이란 섭리'라는 에린의 신앙관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에린의 말 때문에 생각났던 워즈워스의 시 한 편. 

 

A slumber did my spirit seal;

I had no human fears:

She seemed a thing that could not feel

The touch of earthly years.

 

No motion has she now, no force;

She neither hears nor sees;

Rolled round in earth's diurnal course,

With rocks, and stones, and tre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