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쯤에 시즌 1 4화까지 보고 말았던 더 크라운. 오로지 처칠의 깨달음을 위해 처칠의 막내 비서를 죽여버리는 스토리를 보고 너무나 전형적인 '냉장고 속의 여자' 시나리오라 실망하고 관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둠 속의 미사를 보고 또 볼 거 없나~ 하다가 마저 봤다. 결론은 앞부분보다 뒷부분이 더 재밌었다! 사실 전체 후기를 안 쓰고 시즌1 후기만 쓰는 이유는... 지금은 시즌2 앞부분에서 멈춰있어서. 여기는 또 필립이 짜증 난다...ㅋ 엘리자베스의 엄마인 퀸 마더랑도 다르게 배우자가 왕이 될 걸 이미 알고 결혼했으면서 참 불평도 많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서지 않는다 뭐 이런 건지.
아무튼 마가렛 공주의 결혼 관련된 스토리에서 엘리자베스가 입헌군주제의 왕으로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Heavy is the head that wears the crown,' 한국어로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고 하던가. 입헌군주제의 왕은 실권은 없되 의무만 많은 위치다.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호의호식하긴 하지만 과거의 군주들이랑 비교했을 때..) 과연 그 왕관은 마가렛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기만 한 보석일까. 게다가 엘리자베스가 태어났을 때는 왕실 방계 친척이었지만 큰아버지의 퇴위로 인해 갑작스럽게 계승 서열 1위가 된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 왕관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것도 같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엘리자베스의 교육 관련 에피소드('Scientia Potentia Est'). 엘리자베스는 명문으로 유명한 그 이튼 스쿨의 총장에게서 1:1 과외를 받지만, 'efficient'하게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르게 'dignified'된 존재이기에 수학이나 과학, 문학 등의 학문이 아닌 헌법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이후 왕이 되어 정치인들과 대화해야 하지만 관련 지식을 갖추지 못한 엘리자베스는 매번 자신의 진실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하면서 그들을 대한다. 즉, 엘리자베스는 잉글랜드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기초교육에 대한 권리도 누리지 못한 것이다. 왕관은 인간으로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빼앗아간다. 여왕 엘리자베스는 철저하게 인간이 아닌 군주로서 존재해야 하며, 독립적인 개인이 아닌 잉글랜드의 역사와 왕실 계보를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더 크라운을 보고 며칠 뒤에 일본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한 뉴욕 타임즈 기사를 읽었는데, 엘리자베스와 굉장히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아서 군주제는 어디까지 개인의 존엄성을 짓눌러버리는 걸까 싶었다. 세금에 대한 정치적인 논란을 차치하고서도 군주제는 없어져야 할 과거의 악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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