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온 유폴히 작가님의 따끈따끈한 신작 <옷장 속의 윌리엄>! 좋아하는 작가님 작품은 아껴 읽는 편이라 이번에도 느긋하게 읽으려고 했는데 작가님 트위터에서 '사실 이 소설은 제목이 <줄리아가 영문과 대학원에 가게 된 이유>가 될 뻔했어요'라는 트윗을 보고 순식간에 단행본 두 권짜리 소설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읽은 것에 후회는 없지만 유폴히 작가님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빨리 다음 내용을 알고 싶으면서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끝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게 너무나 아쉬운 소설이었다.
이하 스포는 있지만 두서는 없는 감상
그래요... 남친이 윌리엄 셰익스피어면 영문과 대학원 가야지 어쩌겠어...
사실 19세기 말에서 온 윌리엄이라고 했을 때 내가 아는 온갖 근대의 윌리엄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는데 (윌리엄 블레이크.. 윌리엄 워즈워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너무 시대가 동떨어져서 생각도 안 했다. 시대상 예이츠가 제일 들어맞아서 예이츠일 거라 생각했음..ㅋㅋㅋㅋ) 결국은 19세기에서 타임슬립 한 셰익스피어였다...ㅋㅋㅋ
윌리엄이 19세기에서 16세기로 타임슬립한 사람이라는 소재도 그렇고, 세간에서 난무하는 온갖 셰익스피어 관련 추측과 음모론을 버무린 소설이라 너무 재밌었다ㅋㅋㅋㅋㅋ 결말 즈음에 윌리엄이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친구들에게 맡기고 오면서 셰익스피어가 한 명이 아닐 것이란 추측, 혹은 다른 작가의 필명이라는 추측 등이 나오게 되는 이유가 생긴 것도 그렇고. (전부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추측들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건 추측이라기보단 농담에 가깝지만 셰익스피어의 아내 이름이 앤 해서웨이인데 우리가 아는 그 배우 앤 해서웨이의 남편이 셰익스피어와 얼굴이 닮아서 앤 해서웨이와 그 남편이 21세기로 넘어온 셰익스피어와 그 부인 앤이란 이야기도 있었다ㅋㅋㅋㅋㅋ 물론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건 앤과 앤의 애인이 아니라 윌리엄과 줄리아지만! 작가님이 여기서 시간여행이란 아이디어를 착안하신 걸까 싶기도 했다ㅋㅋㅋ
다크 레이디가 아시아계 혼혈인 줄리아란 아이디어도 너무 대박... 사실 다크 레이디 소넷으로 분류되는 127~154번 소넷은 후기 작품이긴 하지만ㅎㅎ 다크 레이디 소넷들은 아름다움과 젊음을 찬양하는 초기의 fair youth 소넷들과 비교해서 대놓고 섹슈얼한 것이 특징인데 윌리엄..! 윌리엄 너어 혼자 소넷 쓰면서 무슨 생각을..!🤭 물론 소설 속에서는 fair youth를 대상으로 쓴 초기 소넷들도 줄리아에게 헌정된 것이겠지만ㅎㅎ
바네사를 보면서 셰익스피어를 너무 사랑해서 셰이키(Shakey)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후배가 생각났다... 사실 영문학과에는 이런 친구가 학년별로 3명씩은 있음...ㅋㅋㅋㅋ 나도 영문학이 좋아서 영문과에 진학했는데 학부를 다니며 저렇게까지 영문학을 사랑할 수 있구나 싶은 친구들을 만나서 너무 놀랐다..ㅋㅋㅋ 학부 들어갈 땐 분명 나도 영문과 대학원에 진학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친구들이 영문과 대학원을 가는구나 싶어서 그 생각은 고이 접음. 어쨌든 그런 친구들이랑 같이 셰익스피어 수업을 들은 적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매번 교수님 바로 앞 첫 번째 줄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고 나는 뒷줄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기억이.. (교수님 죄송합니다 orz)
아무튼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유폴히 작가님 소설은 언제나 날 속절없이 설레게 만든다. 왜일까 고민해봤는데... 작가님의 남주들이 잘생기고 위트 있고 젠틀하기 때문도 있지만 (이런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이 분 작품에서 사랑은 언제나 기다림이자 모험이기 때문인 것 같다. (다 읽어본 건 아니고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 <유월의 복숭아> <옷장 속의 윌리엄> 세 권만 읽어봤지만) 아치와 코델리아가 서책 보관함 앞에서 서로의 편지를 기다리고, 레아와 줄리앙이 영원히 회귀하면서도 서로를 기다렸던 것처럼, 줄리아와 윌리엄도 마법 옷장을 통해서 상대를 만날 수 있을 그 불확실한 순간만을 기다린다. 기다림마저 사랑스러운 걸까 아니면 기다림이 있기에 사랑스러운 걸까. 게다가 이 소설들에서 나오는 사랑은 항상 마법으로 이루어진다. 실제로 마법을 통해 만나게 된 두 사람이 마법처럼 사랑에 빠져서 새로운 사람과 세계를 모험한다. 사랑 또한 미지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모험이다.
원래는 책 읽는 걸 정말 좋아해서 많이 읽었는데 대학 들어가면서 우울증 때문에 집중력이 망해서 책 읽는 게 힘들어졌는데 하필이면 전공이 영문과라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다보니 수업에서 읽는 글을 제외하면 더 안 읽게 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래서 전공 수업에서 다루는 책이나 가벼운 웹소설을 제외하면 전혀 독서를 안 했었는데 몇 년 전에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을 읽으면서 너무너무 오랜만에 독서의 설렘을 느꼈고 그게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 후에 일부러 <십이야>를 다루는 수업을 찾아들었는데 이번에도 또 <옷장 속의 윌리엄> 때문에 사두기만 하고 책장 구석에 박아둔 셰익스피어 소넷 전집을 다시 꺼내게 생겼다ㅎㅎ
내가 셰익스피어 소넷 중 가장 좋아하는 소넷 98번을 끝으로 감상문은 마무리! (줄리아가 윌리엄을 보며 봄의 찬란함을 거론할 거라 생각했던 대목에서 떠올린 게 이 시일지도..?)
From you have I been absent in the spring,
When proud-pied April, dressed in all his trim,
Hath put a spirit of youth in everything,
That heavy Saturn laughed and leaped with him.
Yet nor the lays of birds, nor the sweet smell
Of different flowers in odour and in hue,
Could make me any summer's story tell,
Or from their proud lap pluck them where they grew:
Nor did I wonder at the lily's white,
Nor praise the deep vermilion in the rose;
They were but sweet, but figures of delight
Drawn after you, – you pattern of all those.
Yet seem'd it winter still, and, you away,
As with your shadow I with these did play.
쓰고 보니까 줄리아와 윌리엄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 같기도 한데...; 멋진 감상은 다른 분들이 적어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아무튼 이번에도 별점 5점 중 10점 드리고픈 유폴히 작가님의 <옷장 속의 윌리엄>... 꼭 읽어주세요!!!!!
+)
이거 내가 리디북스에 쓴 리뷰였는데ㅋㅋㅋㅋ 작가님이 트위터에 올리신 걸 보고 깜짝 놀랐다ㅋㅋㅋㅋ
작가님께 빅웃음 드렸다면 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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