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영업글을 보고 보게 된 소설! 전에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다중인격자'라는 키워드가 단순히 성격을 숨기고 다닌다라는 뜻인 줄 알고 패스했었는데 (근데 생각해보면 나 원래 성격 숨기고 사는 남주도 좋아하긴 해..ㅋㅋㅋㅋ) 진짜로 다중인격자이고, 시대적 배경도 계급제도가 혼란스러워지는 과도기라는 설명을 보고 찍먹을 시작했다. 근데 정말 첫 화부터 순식간에 빨려들어가서 내내 몰입해서 읽었다ㅎㅎㅎ
이하 스포
가상의 국가와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회빙환이나 판타지 요소 없는 세계관이라 로판보단 시대극 같다. 판타지 요소가 있는 로판도 좋아하지만, 시대극을 좋아하기도 하고 요즘엔 판타지 요소가 없는 소설이 드문 것 같아서 새로웠다. 내가 소머싯 몸이나 헤밍웨이 같은 잃어버린 세대 작품들을 좋아해서인지, 세계 1차 대전 직후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봤던 웹툰 <눈 먼 정원>도 생각났고. (전쟁과 기억상실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근데 작품 댓글을 보니 미국 남북전쟁 즈음이란 느낌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전쟁이 모니카와 엔리케가 처음 만났던 스토리의 큰 축이기도 해서 과거가 중요하게 비춰지는데, 정말 매번 너무 맴찢이고 처참했다... 모니카가 묘사하던 전시병원의 환자들이나 열악한 환경도 그렇고, 엔리케가 부대원들과 함께 나섰던 전투도 그렇고. 모든 스토리가 전부 잔인한 내용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중간중간에 즐거워보이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전쟁이 더더욱 참혹해보였던 것 같다. 특히 모니카와 앞이 안 보이던 '솔'이 점점 가까워지던 그 장면들은ㅠㅠ
그리고 캐릭터들도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입체적이다. 현실적으로 이기적이고 현실적으로 선량한 개인들이 각자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면서 부딪히는 이야기라서 좋았다. 제일 납작하고 매력 없었던 인물은 아마 엔리케의 형이 아니었을까 싶고. (한스도 너무 싫지만 한스 같은 경우엔 납작하다기보단 너무 리얼리티 2000%라서 행간을 3D 바선생이 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사실 메인 악역(?)인 리엘라와 몰렛 부인은 나름대로의 그 입장과 한계가 세세하게 드러나서 꽤 좋아하는 편이다ㅎㅎ 그리고 옆나라에선 공화제와 입헌군주제가 시행되기 시작하는, 계급제가 무너져가는 시대가 배경이라는 것도 재밌었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다들 살아남으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그렇고, 그런 시대이기에 몰렛 부인 같은 캐릭터들이 한층 더 입체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마지막에 엔리케가 모든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버린 것 같아서 좋았고.
개인적으로 사건보다는 심리묘사가 상세한 소설들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 정말 심리묘사가 장난 아니다... 특히 모니카와 리엘라의 질척질척한 심리묘사. 내심 상대를 걱정하면서도 열등감에서 비롯된 질투에 사로잡힌 두 사람의 심리적 갈등이 나올 때마다 그냥 양쪽 다 이해가 갔다. 열등감이 있기에 상대가 부럽고 미운데, 그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로 죄책감이 들어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 뭔지 너무 잘 알지..ㅠㅠ 그래서 리엘라가 악역 포지션이긴 하지만 참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다들 한 번쯤 가져보지만 절대로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못난 마음이 원인이 리엘라라는 캐릭터의 동력이라. 그렇다고 해서 모두들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아니지만... 물론 그래서 모니카가 더 빛나보인다. 모니카는 리엘라랑 똑같은 갈등을 겪지만 결국은 그 갈등을 넘어서서 리엘라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니까.
근데 사실 <무례한 나의 다중인격자에게>는 나한테는 남주 하나만으로도 필승 조합이긴 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무슨 소리냐면 이런 뜻이다ㅋ
셋 다 무너져가는 신분제 사회 속에서 완벽하게 귀족적이고 오만한 신사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몹시 예민하고 섬세한 성정이기에 속으로는 온갖 자기혐오를 끌어안은 녀석들이다. 거기에 금발벽안이면 금상첨화ㅋㅋㅋㅋ 원래도 싹바가지 없고 예민하면서 자낮인 친구들 좋아해서 솔직히 엔리케는 절대로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었던 듯..ㅋㅋㅋㅋㅋㅋ 물론 이런 속성 외에도 엔리케는 너무너무 좋은 남주지만. 사실 소설 보면서 처음에는 가르시아가 너무 설레서 가르시아를 더 보여달라며 가르시아를 부르짖었지만 (그치만 솔직히 이건 불가항력이지. '겉보기에는 양아치지만 사실은 정 많고 좋은 녀석'은 유서 깊은 필승조합이다) 엔리케의 모든 인격이 합쳐지는 그 장면에서는 그냥 엉엉 울면서 읽었다..ㅠㅠ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인격을 쪼개버리고 그걸 여주 앞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이야기하는 남주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ㅠㅠㅠㅠ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가장 연약한 치부까지 꺼내보이는 캐릭터는 언제나 사랑스럽다...
결론은 너무 좋았고 내 인생작 중 하나가 됐다는 것...ㅠㅠ 작가님 소장본 내주실 거죠?? 믿습니다... 카카페에서 전회차 소장중이지만 소장본도 전권 구매하겠습니다... 사실 <무례한 나의 다중인격자에게>를 읽기 전에 재겸 작가님의 작품 중에서는 <전남편의 미친 개를 길들였다>만 초반에 읽다가 말았었는데 다시 읽어봐야 하나 지금 고민중이다. 집착광공 남주는 아웃 오브 취향존인데다가 내 확신의 픽은 섭남이었기에 관뒀었는데 재겸 작가님의 필력을 믿어보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중...
HOBBIES/웹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