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이 나온다는 소식에 트친분이 강추를 해주셔서 박귀리 작가님의 <버림받고 즐기는 소박한 독신의 삶> 을 읽었다. (특: 버림도 안 받았고 소박하지도 않고 독신도 아님) 웹툰으로 찍먹부터 했는데 주인공들 둘 다 너무 매력적이고 스토리도 너무 재밌어서 곧장 소설로 마저 읽음...
<버즐소>는 연재판이든 단행본이든 표지가 다 너무 아름다운데 젤 맘에 드는 쪽으로 한 개씩만 가져와봤다. 일러스트는 4부 표지가 진짜 너무 아름다움... 하늘도 바다도 가구도 온통 파란색이니까 온 세상이 체자레 장 울드 크리스토퍼(이하 생략)가 된 것 같다. 디자인 표지는 특히 4권 표지가 제일 맘에 드는데, 파란 바다가 보이는 표지가 너무 감각적이고 소설 속에서 바다가 상징하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막 벅차오름ㅠㅠ
이하 스포일러
웹툰 버전을 먼저 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체자레가 굉장히 맘에 들었었다. 왜냐면 구 최애랑 닮아서...(쵸우기야 사랑한다...) 은발에 눈색이 코발트블루라는 점에서 자꾸 구 최애가 생각나서 눈에 밟혔는데 사실 캐릭터성은 닮은 것이 하나도 없다ㅋㅋㅋㅋ 근데 소설 읽다보니 체자레 자체에 푹 빠져버려서 진짜 체자레만 생각하면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회사에서도 실실대는 일주일을 보냈다...
체자레는 사실 내 소나무 취향과 비교하면 너무 알파남인 타입이긴 하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은 좀 더 섬세하고 예민한 타입이라서 겉으로는 멀쩡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문드러져있는 유형인데(ㅋㅋㅋㅋ) 체자레는 너무 건강함. 그런데도 진짜 너무너무 설렜다..ㅋㅋㅋㅋㅋㅋㅋㅋ 체자레 특유의 엄청난 자신감과 여유가 너무 좋았다... 정말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는 확신이 단어 단어에서 뿜어져 나오는데 그게 너무 좋았음... 나.. 상알파남 좋아하나봐;
그녀를 이해해 주는 체자레의 행동이 상호 작용에 의한 이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체자레는 캐서린을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말로는 그녀의 상황과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양 굴면서,
실제 그가 캐서린을 이해하는 데 '앎'이란 것은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캐서린이 캐서린이기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이 면에 대해서 캐서린은 이상함을 느끼지만 난 체자레의 이런 면이 좋았어... 상대를 좋아한다는 명목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을 그 사람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
그리고 캐서린은 진짜 특이한 여주라고 생각했음ㅋㅋㅋ 캐서린이 덤덤하면서 4차원이다보니 서술에서 <버즐소>만의 매력이 생기는 것 같달까ㅋㅋㅋㅋ 본인은 의도치 않는데 (작가님은 의도하셨겠죠..) 웃수저인 여주. 진지한 생각하다가 헛소리 하는 게 너무 웃김ㅠㅠㅠ 게다가 정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쪼르르 체자레한테 가서 보고하는 것도 너무 신선했다ㅋㅋㅋ 보통은 그런 거 얘기 안 하고 있거나 얘기 중에 오해가 생겨서 싸우는 게 로맨스의 정석인데(?) 캐서린은 본인이 릴리스로서 제대로 각성하고 힘이 생기기 전까지 모조리 다 체자레한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고 체자레도 그런 캐서린을 흐뭇해한다ㅋㅋㅋㅋㅋ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길 건덕지가 없음...
다른 캐릭터들도 다 매력적이었다. 조연 중에서는 요한 버스퍼필드와 데미안이 마음에 들었음! 데미안은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섭남일 줄 알았는데 깔끔하게 선 긋고 스승님 겸 남동생 겸 남사친 역이라는 게 신기했다. 난 연하남/남동생 포지션의 남자를 좋아하기에 웹툰에서 꼬맹이 요한을 보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음... 그리고 데미안은 그냥 너무너무너무 웃김ㅠㅠㅠㅠㅠㅠㅠㅠ 캐서린이랑 둘이 만담하는 거 하루종일 보고 있고 싶음 그냥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폴히 작가님의 <유월의 복숭아> 때도 느낀 거지만 이런 정도의... 상대를 다시 한 번 만나기 위해 몇 백 년이고 몇 천 년이고 시간을 되돌리는 사랑은 광기에 필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에 캐서린과 체자레는 단 한 번도 '남남'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2천 년 전에도 6백 년 전에도 현시점에도 체자레든 캐서린이든 한 쪽은 과거/미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상대를 사랑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론 타임 패러독스물에서는 시간선이 영원히 돌고 돌기 때문에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애매모호한 점이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의 사랑이 더더욱 운명적이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오직 '그럴 운명'이었기 때문에 그 운명이 어디서 생겨난 건지 알 수 없어도 그저 납득할 수 밖에 없는 거대한 사랑... 하지만 그래서 시간선 논리를 따라가기가 좀 복잡했다.. 사실 후반부 가서는 좀 이해를 포기하고 읽었음ㅠㅠㅋㅋㅋ 인간 캐서린과 악마 캐서린과 감자 캐서린과 그린 캐서린이 마구 헷갈려서 그냥 그런갑다... 하고 머리를 비웠다.
아쉬운 점은 이 소설이 후반부로 갈수록 스케일이 시공을 초월한 우주로 나아가다보니 안 풀린 떡밥이 많은 것 같단 점이다... 캐서린과 체자레 둘만의 이야기로만 본다면 엔딩은 완벽하지만 다른 인물들을 생각해보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음... 되게 떡밥처럼 흘려진 것들이 많았는데 (요한의 결혼식 선물이라든가 벨리알이 은혜를 갚겠다고 한 것이나..) 하나도 안 밝혀졌다. 심지어 교황이랑 퍼시빌은 메인 악역일 줄 알았는데 후반부 가서 분량이 완전 소멸됐다. 체자레와 캐서린의 세 번째 결혼식 너무나도 아름다운데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된 거지 싶음. 보통 이런 거는 에필로그 같은 챕터에서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짤막하게 보여주지 않나..?ㅋㅋㅋㅋㅠㅠㅠ 소설이 전반적으로 세카이계 스토리라서 그런지 캐서린과 체자레만의 이야기 외의 것은 다 쳐내진 느낌이다... 외전만 한 2권 분량쯤 더 나와야 나머지 떡밥이 다 풀릴 것 같음;; 카카페 보니까 2년만에 외전도 연재중이시던데 거기서 풀리려나...
이하는 좋아했던 대사들!
"일단, 우리가 서로를 용건 없이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무궁무진합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영혼을 교환한 계약관계라는 점."
캐서린은 아주, 몹시 마땅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말로 아주 확실한 근거네요."
"그리고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점."
서로의 비밀? 캐서린은 잠시 의문을 품었다.
체자레는 악마라는 사실이 비밀이고, 나는...... 일단 맞다고 치자.
(...)
"그리고 함께 퍼즐 게임을 즐기는 사이라는 점."
"그것도 타당해요."
"그리고 함께 릴리스호에 탑승했고, 함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점."
"그것도 옳아요."
그 후에도 체자레는 시답잖은 이유를 들먹여 '서로를 용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열 가지 이유'를 채웠다.
마지막 이유인 '그냥 우리가 그러고 싶어서.'를 들먹였을 때는 어쩐지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캐서린.」
「네.」
「살다 보면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평범한 목소리인데 더 오래 듣고 싶고, 평범한 눈인데 더 오래 보고 싶고, 평범한 순간인데 더 오래 기억 남는 것들.」
그리고 체자레랑 캐서린이 서로의 얼굴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게 너무 웃기다ㅋㅋㅋㅋㅋ
"그리고 마지막. 이 얼굴로 지내는 이유."
머리 위에서 들려오던 음성이 봄날의 나비처럼 그녀의 귓가로 내려앉았다.
"당신이 이 낯짝에 정신을 못 차려서."
^이 대사에서 진짜 너무 설레서 입 틀어막고 소리지를 뻔 했음...ㅠㅠㅋㅋㅋ 마르스 때 그 얼굴을 한 건 그냥 우연이지만 그 때 이후로 쭉 그 얼굴인 건 다 캐서린 때문이라는 거 아냐...
왜 쓸데없이 그렇게 잘생겨서는! 물론 다 나 때문이라지만.
"솔직하게 말하라니까요? 마음에 안 들면 바꿀게요. 얼굴 정도야 지금 당장이라도......"
"그래, 곧장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가 되었기는 해."
(...)
책장에 책을 꽂아 넣은 체자레가 더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하지만 죽어도 안 돼. 평생 그 얼굴로 살고 죽어도 그 얼굴로 죽어."
"시종은 불쾌한 건가? 원한다면 내가 널 모실 수도 있다.
다만 영혼의 무게가 다르기에 쉽지 않아.
수천 년을 살아온 내 영혼보다 강력하고 고귀한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
"그러니 기다려주마. 네 영혼이 성장해, 내 영혼의 무게와 의무를 감당하게 되는 날까지."
코 끝이 겹치기 직전.
부탁이라는 이름의 명령이 캐서린의 귓가에 떨어졌다.
"그 때까지만 참아, 주인님."
이윽고 그녀를 내려다보던 여름 바다 빛깔의 눈동자가 천장을 향했다.
「이그드라실, '리바이어던'이 독대를 청한다.」
캐서린의 영혼이 성장해서 체자레의 영혼을 감당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말이 너무 좋았음... 나는 왜 이렇게 기다리는 남자에 환장하는 것일까? (섭남을 사랑할 운명) 그리고 이게 나중에 캐서린이 세상을 수정해서 인간 체자레와 계약하게 된다는 복선이기도 하고.
그녀에게 있어 이 남자를 안 시간은 고작 두 계절에 불과했다.
오를레앙에서 출가한 가을날부터 시작해,
이곳으로 떨어지기 전 연말까지가 체자레를 알고 그와 함께한 전부였다.
하지만 체자레에겐 다르다.
그가 캐서린을 안 시간은 까마득하다.
필멸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유구한 세월 동안 캐서린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다.
600년 전, 그 한시의 만남 하나만으로.
90년 전, 캐서린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이 순간까지.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란 말인가?
「그러니 '릴리스'로서 네게 맹세하겠다, '리바이어던.'」
길고 긴 기다림에 폭삭 무너져 내렸던 코발트색 눈동자가 가늘게 좁혀졌다.
캐서린은 그에게 맹세했다.
「네가 내게 바친 시간만큼 나 역시 네게 바치겠다고.」
악마에게 가장 소중하다는 영혼의 그릇을 걸고.
이것도 지금 보니 나중에 체자레가 캐서린을 기다린만큼이나 캐서린도 체자레를 기다리게 된다는 복선이었어...
정말 오랜만에 읽으면서 설레는 로판이었다. 그냥 '아 재밌다~^^' 하게 되는 게 아니라 찐으로 남주한테 완전 설레는 소설 흔치 않은데... <헌매사> 이후로 진짜 처음일지도? 아무튼 웹툰도 연재 시작해서 새로 유입되는 사람 많을테니 외전까지 포함해서 종이책 세트 재출간해주세요.... 제발...........ㅠㅠㅠㅠㅠㅠ (늦덕은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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